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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포천문중] 한양조씨 곤양공파(양경공파) 종중의 태동
글쓴이 관리인 등록일 2021-02-27 오전 10:38:40 조회수 48



<곤양공파 종중회관>
포천에 한양조씨의 세거(世居)의 기원은 『한양조씨 포천종중 오백년사』에 따르면 대략 350년 전 10세 이참공(휘 壽崑, 상운 찰방)이 신북면 기지리에 정착하여 동래 정씨 문중과 혼인 관계의 연을 맺게 되면서 부터이다. 그 이후 11세 이판공(휘, 玹 )=>12세 찬성공(휘 翼男) 3대와 13세 문간공(휘 絅, 이조판서), 동생 이참공(휘 구, 송천공의 부), 14세 송천공(휘 威明)이 世系를 이어오면서 포천이 한양조씨 가문의 500년 정착지가 되었다.

찬성공의 장자인 문간공과 응교공 부자를 모시는 <문간공파종회>는 1996년 7월에 발족되었고, 차자 이참공과 송천공 부자를 모시는<이참공파종회>는 1980. 11월에 결성되었다.
문간공(絅:1586~1639)의 외아들 14세 응교공(휘,위봉1621~1675)은 아호가 녹문(鹿門)이며 슬하에 구로(아산공), 구원(순천공), 구주(노주공), 구용(별장공)의 순서로 아들 넷을 두었고, 그의 삼자 15세 노주공(九疇,1672-1727)은 수문•수검(昆陽公)•수량•수흠•수관(이참공)• 수간 등 여섯 아들을 두었다. 여기서 자연스레 <노주공파종회(1992. 3. 1.)>가 생겨났다. 그로부터 6년 뒤 <곤양공파종회(1998. 5. 10)>가 포천 문중의 간판을 걸었다.

영조 48년 “곤양공(16세 휘 守儉, 1707-1772, 곤양 군수)”
-곤양군수 재임기간(1772-1772)(곤양향토사 참조)
그는 문간공의 중손자로서 자는 성약, 호는 야암이다. 사마시에 급제하여 승정원 주서, 곤양(현 사천)군수, 병조정랑을 역임하고 홍문관 직제학 지제교 등에 증직되었다. 묘는 포천시 창수면 가양리 차석산에 있다.
<한양조씨 곤양공파 종중>은 야암 선생의 세 아들, 욱(昱)•각(慤)•병의 직계 후손들이 결성해 만든 포천의 말째 종중이다. 1998년 5월 10일, 서울 강북구 번동의 한 음식점에서 남석님을 비롯 고문 이사 등 13인이 모여 조철원 님을 초대 회장(총무 이사, 조병하)으로 선출하면서 종회가 태동되었다. 그 이후 2대 조옥원 회장(총무 이사, 조두행)이 뒤를 이었고, 현재는 3대 조선형 회장(총무 이사, 조병성)이 고문, 감사, 이사를 포함해 12명이 문중의 종사를 돌보고 있다.
문중의 일이란 무엇인가! 후손들 간의 돈목을 이끌고 선조의 빛난 얼을 후대에까지 잘 이어가도록 선도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선대조들께서 한결같이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우리가 죽으면 선조 숭모 일을 누가 맡아 할꼬󰡓. 그러나 어쩌면 그같은 걱정은 기우일 거라 생각한다. 자금이 있고 지도력이 있으면 종사의 일을 후대에 이르도록 잘 이어갈 수 있다. 마치 화초를 잘 가꾸려면 물을 주고 사랑을 주어야 꽃이 잘 피우고 자라듯이 문중의 宗事도 화초 가꾸기와 다름없다.
곤양공 종회에서는 宗材 관리로 2020. 5. 1. 창수면 가양리 산 126-1 임야 5만 평의
매각 대금으로 수원시 장안구 율전동 소재 7층 건물과 오피스텔 등을 매입하여 생산적인 종재로 만들었다. 임대료 수익으로 장차 종회가 지켜가야 할 정해진 행사(사초, 제례행사 등)외에 종인 간 돈목에도 더 힘쓰며 더 나아가 대내 • 외적으로 야암 선생 ‘장학 및 구제사업’에 힘써 선조의 얼을 빛내는데 힘써 나갈 것이다.
선형(25세, 양경공파, 곤양공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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