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포토앨범
 
 
글제목 곤양공(16세,휘 수검,양경공파) 회관 개소식 거행
글쓴이 관리인 등록일 2021-01-08 오전 9:13:27 조회수 10



지난 12월 5일은 곤양공파 종중에서 수원시 장안구 율전동 소재 신원빌딩(7층)에 종중회관의 개소식과『야암(野岩) 선생 기념관』,『한양조씨곤양공파 종중회관』현판식을 갖은 뜻깊은 날이었다.
코로나의 사태 속에서도 전국에서 모인 30여명의 종인들이 모여 회관의 개소식에 개인적 위생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키는 가운데 오랜 숙원 끝에 이룬 종중회관의 개소식과 현판식을 감격 속에서 자축하였다.

*야암 조수검(趙守儉, 1707~1772), 영조 48년에 곤양군수로 재임, 서기 1772년(壬辰)~서기 1772년(壬辰), 문간공의 증손자이다.
포천에 한양조씨가 일가를 이루고 세거(世居)하기 시작한 때는 조선 중기 시조로부터 12세 찬성공 익남(1564~1605) 선조부터이다. 그의 슬하에 아들 경(絅)과 구(緱)가 있고, 첫째인 경 님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대제학 이조•예조 판서와 조선통신부사 등 벼슬을 하셨고 사후에 영의정 추서까지 받아 문간(門間)의 시호를 가지신 한양조문의 보석같은 존재이다.
문간공 絅(1586~1639) 님의 가계는 슬하에 외아들 14세 위봉(응교공:1621~1675)이 있고, 그는 첫째 구로(아산공)로부터 구원(순천공), 구주(노주공), 말째 구용(별장공의 순서로 아들 넷을 두었다.

오늘 현판식을 하고자 하는 주인공 야암선생은 부친 15세 노주공 구주(1672~1727) 님의 여섯 아들 중에 둘째 아들 16세 조수검(곤양공:1707~1772) 선조이다. 그는 조선조 영조 때 정시 병과로 급제하고 병조정랑과 곤양군 군수 벼슬을 하셨다. 곤양군은 조선조에 경상남도 하동군과 남해 진주에 인접해 있는 郡이었다. 1913년까지는 곤양군의 명칭이 살아있었지만 일제(日帝)와 대한민국 행정개편을 거치며 현재는 사천시로 개칭되었고, 곤양의 명칭은 곤양면으로만 남아 역사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한양조씨곤양공파는 곤양공 세 아들 昱• 慤• 병의 직계후손들이 결성해 만든 포천의 말째 종중이다. 1998년 5월 초대 회장 조철원 님을 시작으로 2대 조옥원 회장의 뒤를 이어 3대 조선형 회장이 문중을 이끌고 있다.
<자료제공; 곤양공파 회장 선형>




   
 
ADD. 110-052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5가길 28 광화문플래티넘 601호. TEL: 02-738-4035~6. FAX: 02-738-4050
Copyright ⓒ 2005 한양조씨[조씨문중]. All rights reserved. E-Mail: hancho-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