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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순수 고독, 순수 허무
글쓴이 조병화 등록일 2020-11-03 오후 1:40:02 조회수 13




시와 그림으로 본--공산권 나라 여행!!!

벌써 작년이 된다. 세월 참으로 빨리 도망도 간다. 세월이 캄캄한 어제로 도망칠수록 인간은 그만큼 늙어간다. 작년 11월, 뜻밖에 공산권의 하나인 중국을 여행하게 되었다. 10월에 제11회 세계세인대회가 타일랜드의 수도 방콕에서 있었고, 방콕 세계시인대회는 15명의 한국대표를 인솔했었다. 금년엔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11월에 열린다. 이 대회에도 많은 대표들이 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중공이, 얼마나 가기 힘든 나라였던가, 그만큼 긴장감도 더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자유국가를 여행하는 것만큼 수월하게 되었다. 그만큼 우리나라도 커졌다는 것을 뜻하는 거다. 사실 우리나라도 엄청나게 커졌다. 미화 5,000불까지 자유스럽게 가지고나갈 수 있게끔 되었으니.
 내가 1957년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33년 전에 처음으로 일본 동경에서 열렸던 P. E. N. 대회에 참석했을 땐 500불밖엔 공식적으로 가지고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자연 소위 야미 달라를 안 가지고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이렇게 그 10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미화를 가지고 나갈 수가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우리나라가 강대하게 되었는가. 그렇다고 해서 돈을 흥청망청 써서는 안 되겠지만 하여간 그만큼 여행이 자유스럽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행자유는 국력을 단단히 펴가는 데 참으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남의 나라를 많이 볼수록 우리나라도 커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행 자유화를 부정적만 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긍정적으로, 더 나가서는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나는 본다.
(중략)

첫발 디딘 중공 땅, 참으로 감회가 무궁했다. 꿈에도 생각 못했던 철의 장막 아니면 죽의 장막이 아니었던가. 그 첫발을 디딘 중공 땅은 내가 어려서 시골에서 보던 그 대자연 그대로였다.오염되지 않은 그 흙냄새, 인분냄새, 수풀냄새, 그대로 나는 대자연이었다. 나는 그 맑은 공기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러나 거리는 우리나라 해방 직후의 모양 그대로 미개지였다. 그리고 어딜가나 달라 바꿔달라는 청년들이 우굴 거렸다. 그리고 담배 달라, 볼펜 달라, 껌 달라, 달라는 것이 그렇게 많은 빈곤한 사람들 뿐이었다. 이곳 계림(桂林)에선 뱃노래가 제일이다, 배를 타고 강을 꾸불꾸불 100리를 내려간 그 강 위에서의 경관이 기암절벽 이루 말할 수 없는 절경이다. 옛날엔 이곳이 바다 밑이었다고 한다. 생전에 보지 못했던 산수의 경치, 나는 그것에 압도당했다.
    기암절벽이라는 말을 실감하면서    강로백리(江路百里)길을 흘러 내려 갔었다    강변의 촌락들이 서정시 같았다. 이런 시를 메모하면서 다른 것은 더 말할 수가 없었다. 다음엔 중공 국내기로 중국 고도 서안(西安)으로 갔다. 서안은 진시왕으로 유명한 곳, 양귀비(楊貴妃)의 별장 화청지(華淸池)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줄 썼다.
    국가는 망하더라도 사랑만 있으면.

(중략)
남경에서 양자강(楊子江) 다리를 보았을 땐 그 인간의 힘에 놀랬다. 만리장성을 쌓을 때  만큼의 인력이 동원되었으리라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어마어마한 다리였다.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이곳에선 양자강(楊子江)을 장강이라고 한다   장강에 걸친 다리는   과연 인간의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사풍 속에서. 이렇게 한 열흘을 주마간산 격으로 돌다가 남경에서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다시 홍콩으로 나왔다. 그 깨끗한 국제선, 어쩌면 그렇게 국내기와 다를까, 같은 중국 민항기인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홍콩공항 의자에 앉아 있노라니, 벌을 받고 나온 사람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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