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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08월
 
조병락 고문

● 병락 고문은 1929년 음력 1월 3일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포남리에서 父 상원 님과 母채성순 님 사이에서 3남 1녀 중 3남으로 출생하였다. 1955년 仁暎 張後男 여사와 결혼, 슬하에 아들/며느리 각 3명, 손자 3명, 손녀 3명, 손서 1명 증손자 1명을 남겨두고 2020년 7월 14일 노환으로 향년 91세를 일기로 선종(善終)하여 안성 소재 천주교 공원묘지에서 영면하였다.
칠곡에서 태어난(중복내용, 생략) 고문은 김천중⦁고등학교 졸업, 국립해양대학교를 졸업한 후 대한해운공사에 공채 입사하여 업무에 충실하여 한국석탄공사 차장으로 근무하였다. (스카웃) 그 후 한국알루미늄(주) 공장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전공을 찾아 대선조선 상무로 근무하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롯데그룹 상무/감사로 근무하였다.
모든 직책을 소화해 낸 대표적인 인물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만취 병락 고문은 장 후남 여사와 결혼 후 바로 천주교 세례를 받고, 이후 꾸준하고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특히 성당 봉사 활동에도 앞장서서 성당 업무추진기구인 사목회에서 부회장으로 다년간  봉사하였고, 또한 성경공부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해박한 성경지식을 보유하는 등 성당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종친종회에 각별한 애정을 가져 중진으로서 많은 활동을 하였으며, 2013년 아들로 하여금 한양조씨대종회 상징 로고를 제작하여 증정하게 하였다.
특히 한양조씨 대통합을 이룰 때 많은 힘을 쏟아 통합대업을 이루는데 큰 힘을 쏟았다.
특히 오래 전부터 가까이 지내셨던 종친회 회원님들과의 만남을 가장 즐겁게 여겨서 임종 직전까지도 종회 모임에는 꼭 참석을 하셨고, 또한 이번 9월모임에는 고문께서 식사 대접을 하는 순서였는데, 혹 당신께서 못하게 되는 경우엔 자제분들에게 꼭 성대히 어른들을 모실 것을 유언 아닌 유언으로 남기셨다. 
 또한 병락 고문께서는 펜글씨를 매우 아름답게 쓰셨던 것은 물론 서예에 조애가 깊어 수십 년간 닦은 서예 실력으로 많은 작품을 내셨으며, 지인들에게 작품을 선물로 주시는 것을 매우 좋아하셨다. 
특히, 말년에는 단소 강습에 열심히 임하셔서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연습을 하시어 주위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이토록 나이를 불문하고 무엇이든지 항상 노력하는 모습을 우리 한양조문의 후손들에게 전해줘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앞줄 좌로부터; 종익명예회장, 운해고문, 병락고문,
뒷줄 성국 고문, 계기 고문>
고우신 천성으로 남의 어려움을 그냥 넘기지 못하였고, 주위 친지 등 많은 분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애틋하여 본인은 지극히 소박한 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자녀들에게는 풍족한 여유를 제공해 주었다.
특히 고문께서는 형님들과 형수들을 깊이 사랑하시어 오랜 기간 동안 먼저 작고하신 형님들과 누님에게 부모님 이상으로 잘 모시는 효도를 보였다. 
물론 조상에 대한 공경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서 항상 자손들에게 한양 조씨에 대한 역사에 대해 강의해 주셨고, 고향인 칠곡 선산에 위치한 조상님들 묘 위치까지 기록하여 남겨두었다.
이러한 항상 먼저 베풀어라, 솔선수범하라, 그리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음 결과를 기다리는 盡人事待天命의 삶의 자세를 가지라는 병락 고문의 뜻을 이 기사를 통해 전달해드린다.
병락 고문은 지난해 운해 고문의 경우와 같이 먼저 간 부인을 따라서 소천하였다. 두 분의 금슬이 특히 좋으셨다고 주위 어른들이 전하고 있다.
생전의 삶을 반영이라도 하듯 임종 시 큰 고통 없이, 후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아주 편안히 선종하셨다.

*유족 대표로 장자 주환周煥 종인을 통해 종보성금 100만 원을 기증했음을 전한다.

漢陽趙門 모든 종인은 삼가 병락 고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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