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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종친은 구한말(舊韓末)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바지하고 우리 문중(門中)을 빛낸 근현대(近現代)의 인물 중 작고(作故)하신 분을 가나다순으로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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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원(趙相元, 1913~2000)
 
현암사 창업주·『법전法典)』의 대명사

양경공파 23세. 경북 영주 출생. 호는 현암(玄岩). 1932년 독학으로 보통문관시험 최연소 합격.

1945년 해방된 조국에서 민족정론을 바로 세우기 위해 대구에서 시사종합지 『건국공론』을 창간하였다. 1951년 6·25 동란의 와중에서, 우리나라 10대 출판사의 하나가 된 도서출판 『현암사(玄岩社)』를 등록하고 1959년 조상원 편저 『법전(法典)』을 대성공리에 발행하면서 1994년 그 열매로 『현암법학저작상(玄岩法學著作賞)』을 제정하였다.

독서신문 사장과 대한출판문화협회 부회장에 선임되었고 출판문화에 이바지한 공로로 서울시문화상, 국민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조영원(趙永元, 1892~1974)
 
상해임정 의정원 의원·의열단 집행위원
한국독립군 총참모로 평생을 조국광복에


양경공파 23세. 경기 포천 출생. 호는 각산(覺山).

유신학교 졸업 후 1910년 서간도에 망명중이던 이동령(李東寧)·이시영(李始榮) 등과 비밀리 회동, 1920년 상해로 망명, 임정(臨政) 의정원(議政院) 의원·임정내 비밀조직인 의열단(義烈團) 집행위원·임정 의정원 국무원 비서장·독립당 촉성회 대표·신민부 고문·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신창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30년 재만(在滿) 독립운동자들의 항일활동 결집체인 신한농민당을 조직하여 조직부장이 되고 1931년 한국독립군총사령부 총참모가 되었다.

1933년 일경에 체포, 사형 판결을 받고 신의주 감옥에서 복역하였다. 해방 후 오세창(吳世昌)·김창숙(金昌淑)과 입국환영회를 조직하여 광복군의 명예로운 입국을 도왔고 1956년 한양조씨대종회를 창립하여 회장에 추대되고 유석(維石) 병옥(炳玉) 박사를 도유사(都有司)로 하는 대보소(大譜所)를 설치하여 기해보(己亥譜)를 발간하였다. 1964년 한독당 대표최고위원이 되었으나 정치인으로의 활약보다는 그가 만들었던 당의 재건에 뜻을 둔 것이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으며 포천 창수초등학교 교정에는 1984년 포천시민의 이름으로 독립유공자 공적비가 세워졌다.
 
조영환(趙榮渙, 1909~1990)
 
판도공파와 총관공파 통합의 주춧돌

양경공파 23세. 경북 영덕 출신. 호는 석암(昔庵). 청구대 법문학부 졸업. 영덕군농회장, 경북대학교 및 부산대학교 사무과장 등을 지냈다.

병참공파종회장 재임시 종중재산을 철저히 관리하고 1975년 한양장학회를 창설하였다.

1974년 대종회장 재임시 판도공파와 총관공파의 화합과 통합을 위하여 안으로는 판도공을 시조공의 1자로, 총관공을 2자로 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한양조씨세계표(漢陽趙氏世系表)를 임원회(1977.2.12), 임시총회(1977.2.13), 특별위원회(1977.3.5)의 결의로 확정하여 공식화하고 밖으로는 판도공파종친회와 총관공파종친회 중심의 한양조씨대종회를 하나로 통합하여 단일 대종회를 창립할 것을 임원회의 의결로 확정하고 추진하였다.

그러나 통합을 반대하는 일부 종친들의 폭력행위로 통합 대종회 발기인 대회가 무산되고 위 결의 무효화를 주장하는 소송이 제기되었으나 서울지법(1978.1.26), 서울고법(1978.9.20), 대법원(1979.1.30)의 판결로 기각 당함으로써 석암공(昔庵公)은 판도공파와 총관공파 통합의 주춧돌이 되었다.
 
조윤형(趙尹衡, 1932~1996)
 
충정공파 25세. 충남 천원 출신. 유석 병옥 박사의 차남.

연세대와 미국 조지타운대 졸. 28세에 정계 입문하여 6선(選) 국회의원으로 국회 부의장을 역임하고 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조종석(趙鍾奭, 1932~2005)
 
양절공파 22세. 충남 예산 출생. 건대 법정대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수료. 치안본부장, 1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한양조씨숭조회의 초대 회장을 지냈다.

보국훈장, 근정포장, 녹조·홍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
 
조종승(趙鍾勝, 1900~ · )
 
양경공파 22세. 충북 단양 출신. 초대·2대 국회의원. 6.25사변 중 납북 실종되었다.
 
조지훈(趙芝薰, 1920~1968)
 
전통미 노래하고 망국의 슬픔 깨우쳐
『지조론』 쓰고 추상같은 질책과 격렬한 비평


양경공파 27세. 경북 영양 출생. 본명은 동탁(東卓), 지훈은 아호(雅號). 혜화전문학교 문과 졸업.

1939년 우리 고유 문화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고풍의상(古風衣裳)』, 『승무(僧舞)』, 주권 상실의 슬픔을 시화(詩化)한 『봉황수(鳳凰愁)』를 발표하고 문단에 데뷔하였다.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집(靑鹿集)』을 비롯하여 『풀잎단장(斷章)』, 『조지훈 시선(詩選)』, 『역사 앞에서』, 『여운(餘韻)』 등 5권의 시집을 냈고 수상록 『창에 기대어』, 『돌의 미학』, 『지조론(志操論)』, 시론집 『시의 원리』, 『시와 인생』, 번역서 『채근담』 등을 남겼다.

광복 후에는 이데올로기적 프로문학에 대항하여 순수문학을 옹호했고 6.25전쟁시에는 종군문인단(從軍文人團)을 결성하여 전쟁터에서 생사를 걸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였으며 종전 후에는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지조와! 절개의 시인으로 추상같은 질책과 격렬한 비판을 하였다.

만년에는 시작(詩作)보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장으로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를 기획, 이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가 저술한 『멋의 연구』, 『한국문화사 서설』, 『한국민족운동사』 등은 한국학 연구의 영원한 명저(名著)가 됐다. 자유문학상을 받았고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2001년부터 그의 고결한 뜻을 살리고자 『지훈상』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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